영국교회 유산을 만나는 여행] (7) 존 번연, 12년간 투옥중 ‘천로역정’ 신앙 유산으로 남겨

영국교회 유산을 만나는 여행] (7) 존 번연, 12년간 투옥중 ‘천로역정’ 신앙 유산으로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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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교회 유산을 만나는 여행]  (7) 존 번연, 12년간 투옥중 ‘천로역정’ 신앙 유산으로 남겨

존 번연의 출생지를 알리는 간판과 함께 엘스토우의 무트 홀

런던 북쪽에 위치한 잉글랜드 중부지역인 옥스퍼드(Oxford)와 캠브리지(Cambridge)에서의 신앙유산 탐방에 이어 오늘은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의 신앙유산을 찾아가 본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년 ~ 1688년)은 영국의 침례교도이자 작가이다. 영국 베드퍼드셔 주 엘스토우(Elstow)에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청교도 혁명 중에는 의회군으로 참여하였다. 청교도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평신도로서 설교활동을 열심히 하여 1635년 베드포드 침례교회에서 '번연 주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국왕인 찰스 2세는 영국 국교회 즉, 영국 성공회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교파들을 탄압하였고, 침례교도인 존 번연은 허가 없이 복음을 전한 혐의로 12년 동안 투옥되었다. 투옥기간동안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을 썼는데 존 밀턴의 ‘실낙원’과 함께 17세기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존 번연의 신앙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은 엘스토우와 베드포드(Bedford)이다. 엘스토우는 그가 태어나서 회심하기 전까지 지냈던 곳으로 베드포드에서 남쪽으로 2.5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땜장이 시절에 살던 집이 이곳에 있었는데 1968년에 헐렸고, 현재는 그의 생가를 알리는 명판만 남아있다.

엘스토우 무트홀(The Moot Hall, 주소: Church End. Elstow MK42 9XT)은 번연이 살던 시대의 마을회관과 만남의 장소로 17세기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며 존 번연과 관련된 전시물과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고, ‘천로역정’에 관한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

잔디밭은 번연이 영적 체험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베드포드는 존 번연이 《천로역정》을 쓰고 사역했던 곳으로 그와 관련된 10여개의 신앙 유적들이 시내 반경 1마일 안에 모두 위치해 있다. 그 신앙의 유적들을 찾아 걷다보면 소설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만났던 상황과 환경에 관하여 영감을 받은 곳이라 느껴지는 곳이 많다.

존 번연은 자신의 죄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1653년에 존 기퍼드(John Gifford) 목사를 통해 회심하게 되는데 1180년에 세워진 세인트 존 교회(St. John Church, 주소: 38 St. John’s Street, Bedford, MK42 0DL)는 기퍼드 목사가 목회한 교회이다.

번연은 회심 후에 이 교회 종탑에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나눴다. 베드포드 시내의 짧은 골목길인 체탬스(Chethams) 끝의 우즈(Ouse)강변에서는 번연이 침(세)례를 받았던 장소(명판이 붙어 있음)를 찾을 수 있다.

베드포드 중앙도서관은 존 번연시대에는 감옥이었던 곳이다. 도서관 입구에는 ‘천로역정’의 여러 장면들을 표현한 그림들이 있고, 바닥에는 감옥이었음을 알리는 명판이 있다.

[영국교회 유산을 만나는 여행]  (7) 존 번연, 12년간 투옥중 ‘천로역정’ 신앙 유산으로 남겨

존 번연박물관안에서 존 번연 밀랍인형과 함께선 필자


중앙도서관에서 High Street를 따라 강 반대편(북쪽 방향)으로 가면 사거리에 존 번연 동상이 있으며 동상 사각기둥에는 ‘천로역정’의 여러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 외에도 St. Cuthbert Street에서는 번연이 비국교도 설교자 시절에 살던 생가 흔적을 기념 명판으로만 만날 수 있다.

베드포드의 대표적인 번연 기념 장소는 존 번연 박물관과 미팅 교회이며 이 두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존 번연 박물관(John Bunyan Museum, 주소: Mill Street, Bedford, MK40 3EU)은 1998년에 개관하였고, 번연의 생애를 실감나는 장면들로 표현했으며, 투옥돼 있던 감옥도 재구성해 놓았다.

박물관과 붙어있는 존 번연 미팅 교회 (Bunyan Meeting Free Church)는 그가 1671년부터 1688년까지 사역했던 곳으로 1850년에 지금처럼 세워졌다. 이 교회의 입구인 청동문에는 10개의 천로역정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영국교회 유산을 만나는 여행]  (7) 존 번연, 12년간 투옥중 ‘천로역정’ 신앙 유산으로 남겨

존 번연 미팅교회 청동 정문에 묘사된 10개의 천로역정



2년간 재수감되었던 감옥은 베드포드를 동서로 흐르는 우즈강을 건너는 타운 브리지(Town Bridge) 위에 있었다. 번연은 12년간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썼지만 석방된 후 바쁜 사역으로 인해 탈고하지 못하다가 1675년에 그 곳에 재수감되어 완성할 수 있었다.

번연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타운 브리지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인 스완 호텔(Swan Hotel) 앞에서 번연이 수감된 곳을 바라보며 남편의 석방을 위해 기도했다. 번연이 ‘천로역정’에서 ‘아름다운 집(House Beautiful)’에 대해 기록할 때, 이 스완 호텔을 생각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을 근거로 하여 쓴 ‘천로역정’은 성도의 인생이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여정임을 우화소설의 형식을 빌어 완성한 책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만나는 인물들, 거쳐 가는 도시들과 장소들을 통해 성도들이 만나는 장애와 도전을 비유적으로 알려주면서 성경의 교훈을 따라 살도록 썼다.

이런 내용으로 말미암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며,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번역되어져 개신교 영성을 대표하는 책이 되었다. 한글 ‘천로역정’은 1895년 캐나다 선교사 게일(James S. Gale)에 의해 번역되었다. 2부는 선교사 언더우드의 아내인 릴리아스 호튼 여사(Lillias Horton Underwood)에 의해 번역되었다.

한국 초대교회의 거목 길선주 목사가 천로역정’을 읽고 회심하였고, 1903년 한성감옥에 수감된 이승만과 이상재 등도 영향을 받았다. 필자는 존 번연의 석방을 위해 기도했던 그의 아내와 면회를 왔었을 눈먼 그의 큰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출옥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기도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나 그녀의 수고와 기도는 정말 응답되지 않은 것일까? 당시 영국에서는 국교회 사람들만이 대학에 갈 수 있었기에 대부분의 민중들은 번역된 성경이 있어도 읽을 수 없었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천로역정’은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우화형식이어서 읽는이마다 쉽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위대한 일이 번연이 감옥에 있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당한 고난과 감옥에 투옥된 역경의 기간을 통하여 마침내 《천로역정》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들의 고난이 무엇이든지간에 분명한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 여행이었다.<계속>

<고상환 목사 (세계선교침례교회 담임, 게이트웨이신대원 초빙교수)>

1 Comments
디케DIKE 2023.11.14 19:50  
존 번연이 방탕한 생활을 접고 회심한 후 감옥에서 저술한
'죄인에게 넘치는 은혜'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신앙고전이다.
1628년 존 번연은 영국의 베드포드 근방의 엘스토우에서 태어났다.
1945년 의회파 군대의 병사로 징집되었다.
1949년 존 번연이 결혼했다.
1655년 존 번연의 첫번째 책 [공개된 몇 가지 복음의 진리들](Some Gospel Truths Opened), [죄인에게 넘치는 은혜](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 [기도](Prayer), [거룩한 성](The Holy City),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등 60여권의 주옥같은 저술을 남겼다.
1660년 존 번연이 불법 집회 및 설교 혐의로 베드포드 주립 형무소에 투옥되어 12년 동안 복역하였다.
1672년 존 번연이 베드포드 교회에 목사로 초빙 되었다.
1688년 존 번연이 열병에 걸려 한 친구 집에서 치료를 받다가 60세의 나이로 이 땅의 침상에 누웠다.
이전에, 나는 뾰족탑의 종을 치는 것을 몹시 즐겨했다. 그러나 나의 양심이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 이런 습관이 헛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이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마음을 여전히 이 일을 갈망했으며, 그래서 교회의 종탑으로 가곤 했는데, 감히 종을 치지는 못했다. 나는 꼭 이렇게 하는 것이 신앙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자제하며 조용히 구경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나는 종들 중 하나가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회 건물 좌우를 가로지르는 대들보 아래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서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종이 흔들려 떨어 지면 이 들보 때문에 먼저 벽에 부딪치게 되고, 내게 튀어서 나를 죽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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