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 있던 땅이 어쩌다… 기독교 인구 0.006%로

일곱 교회 있던 땅이 어쩌다… 기독교 인구 0.006%로

디케DIKE 0 814
▲언덕 위에 있는 버가모 유적지. 아스클레피온 병원 흔적도 이곳에 있다.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인 버가모 교회가 있었던 고대 버가모(Pergamum) 유적지 북쪽 끝에는 고대에 만든 도서관의 터가 남아있다.

 

이 도서관은 버가모 왕국의 에우메네스(Eumenes) 2세 통치 시절(기원전 197-159년)에 만든 것으로서, 장서 20만 권을 갖췄었다고 한다. 그러나 버가모 왕국은 기원전 133년 로마에 점령됐다. 비록 당대 최대의 도서관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보다 1세기 늦게 세워졌지만, 버가모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했을 정도로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 가운데 하나였다.

고대에는 도서관이 있는 도시에 여러 지역에서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즉 도서관의 존재는 그 도시의 부(富)와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원전 48년에 로마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되자, 기원전 43년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버가모 도서관의 장서를 탈취해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여왕)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주었고, 클레오파트라는 이 책들로써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충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버가모 시내에서 한때 기독교 교회로 사용된 건물(요한계시록 버가모 교회 아님).

▲버가모 시내에서 한때 기독교 교회로 사용된 건물(요한계시록 버가모 교회 아님).

 

또 다른 전설은 버가모 도서관을 학문 경쟁자로 여긴 이집트는 고대에 책을 만드는 데 사용된 파피루스(풀)를 버가모 왕국에 수출하는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버가모에서는 파피루스를 대체하기 위해 양의 가죽을 씻어 늘린 다음 석회로 표백, 건조한 양피지(羊皮紙)를 만들어 사용했다.

버가모인들은 자기들이 처음으로 양피지를 만들었다고 하나, 일부 학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이집트에서도 양피지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하여간 이렇게 사용된 양피지는 중세에도 많이 사용됐다.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로마 제국 첫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가 탈취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갖다놓은 서적 일부를 버가모 도서관에 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버가모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도서관의 활동도 함께 쇠퇴해졌다. 말이 나왔기에 한 마디 한다면,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 초대교회와도 깊은 관계가 있고 너무 매혹적인 도시이므로, 필자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북아프리카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책을 저술하고 싶다.

▲버가모 시내 교회 건물 옆에 있는 이슬람교 모스크(사진 오른편 원통형 건물).

▲버가모 시내 교회 건물 옆에 있는 이슬람교 모스크(사진 오른편 원통형 건물).

 

아스클레피온 병원이 있던 유적지 바로 앞에는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튀르키예 육군 기갑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지나면서 부대 철조망을 통해 보니, 길 옆 부대 안에 90mm 포를 장착한 미국제 M48전차(1960년대 제조) 약 20대가 연병장과 정비소 건물 안에 서 있었다. 전차 주위에는 AK47 소총과 G3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스 육군도 2000년대초 동일한 모델의 전차를 갖고서 튀르키예와 맞섰다.

1974년 7월 24일, 튀르키예와 그리스가 사이프러스 문제로 전쟁을 치렀다. 그때 사이프러스섬 북부 해안에 상륙한 튀르키예군은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그리스군을 격파하고, 손쉽게 디코마(Dikoma), 랍타(Lapta) 등의 도시가 속해 있는 사이프러스 동북부를 점령하였다.

당시 튀르키예 전차부대의 M47전차(M48보다 구형이므로 M48보다 승무원이 1명 더 많은 5명이고 전차포 구경은 동일함)가 그 작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당시 양국은 대규모로 전쟁을 확전시키려 했다.

그러나 양국 모두 NATO(북태평양조약기구)의 일원으로서 모두 미국의 동맹국들이었으므로, 미국의 중재로 전면전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이프러스섬 동북부는 그때 튀르키예군에 점령됐다.

▲버가모 시내 주택가. 말이 끄는 수레가 지나가고 있다.

▲버가모 시내 주택가. 말이 끄는 수레가 지나가고 있다.

 

오늘날 양국은 겉으로는 물론 이웃 나라로 지내고 있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경계하며 언젠가 다시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가 마주 보이는 버가모에 튀르키예는 전차 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필자가 군 복무 시절인 1970년대 동부전선에서는 국군도 M47전차를 운용했는데, 당시 미국 군사원조롤 받은 나라 가운데 구형 M47전차를 애지중지 정비하면서 그렇게 오래 사용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었다. 당시 서독군(독일)의 경우는 M47을 폐기하고 자국산 신형 전차로 교체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국산 K2 흑표전차를 폴란드에 대규모로 수출하고 있는 한편, 튀르키예에는 2008년부터 K2 전차 기술을 전수해 주었기에, 현재 튀르키예는 자국산 알타이 신형 전차를 제작하고 있다.

필자는 석사와 박사 학위 모두를 기갑전투 논문으로 취득했기에, 전차만 보면 엔돌핀이 나와 기분이 좋아진다.

자동차로 붐비는 버가모 시내 주택가에는 말이 끄는 수레도 보이므로, 왠지 정이 통하고 인간미가 느껴진다. 시내를 지나서 좀 더 가다 보니, 웅장한 교회 유적지가 나온다. 이 유적지는 원래 이집트 신전이 있던 곳인데, 그 후 기독교 교회로 사용돼 왔지만 오늘날에는 폐허가 돼 버렸다.

그 옆에는 작은 규모의 원통형 이슬람 모스크가 있는데, 이 모스크는 이슬람 교인들이 찾아오면서 현재도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기독교가 왕성해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던 튀르키예에서, 오늘날 개신교회를 찾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기독교인으로 넘치던 땅이 어쩌다 오늘날 인구 8천만 명 가운데 0.006%인 5천 명만 기독교(개신교)인인 나라로 바뀌었는가?

튀르키예 곳곳을 여행하면서 필자가 항상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점이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5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등

0 Comments
반응형 구글광고 등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