塵人조은산) 짝사랑 / goodmountain7 ・ 2020. 8. 25. 17:04
디케DIKE
조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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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11:23
동네슈퍼에 가서
던힐 파인컷 1미리주세요 하면
이 아저씨는 항상
회색케이스의 3미리에 먼저
손이 가고 그 다음 머뭇거리기 시작한다
그거 말고
흰색이요 흰색
내 지적이 있고나서야 이 아저씨는
담배를 챙기기 시작한다
내가 여기 살기 시작한지 벌써 몇 년이고
내가 담배를 사는 곳이 이 슈퍼말고는 없는데
나는 이 아저씨가
물건을 먼저 담고 계산을 받는지
계산을 먼저 받고 물건을 담는지
카운터위에 젤은 지폐를 셀 때 쓰는지
봉다리를 뜯을 때 쓰는지
그 소소한 것까지 다 알고있는데
이 아저씨 내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당연한 것이다
이 곳에서만 담배를 사는 나에게는
이 슈퍼아저씨가 전부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슈퍼아저씨에게
나는 그저 그들 중 한명의 손님뿐이다
내가 그의 백을 기억한다면
그는 나의 백분의 일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내가 가진 소중함의 크기가 다르니
남겨두는 기억의 크기 역시 다른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해서
그 또한 나를 잘 알 것이라 믿는 것,
내가 느낀 누군가의 존재감을
그 또한 그 만큼 채워주기를 기대하는 것,
문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긴 밤이
나만의 것은 아닐거라며
벌개진 두 눈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던
내 어리석음이 생각났다
그것은 나만의 밤이었다
아마 그는
내가 항상 흰색케이스의 던힐파인컷 1미리를
두 갑씩 사간다는 것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한 단 한명의 손님이 되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