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위대하고도 고마우신 순교자로소이다" [ 흔적을찾아서 ] 完. 한국개신교 최초 순교자 토마스 목사 순…
디케DIKE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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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1 09:49
2020년 07월 17일(금)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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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송 목사의 선교신학 박사학위(PhD) 논문제안서(Proposal)는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 선교신학에 아주 중요한 주제로 평가됩니다. 동·서양의 만남과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향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개인적으로 나의 조국 독일의 통일과 대비,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의 '토마스의 생애와 선교사역' 주제의 선교신학 논문제안서가 영국 버밍함대학교 신학부 교수 우스토프 박사(Pof. Dr. Verner Ustorf)에 의해 흔쾌히 수락됐다. 필자 나이 50세. 만각(晩覺)에 만학(晩學)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어린 영혼에 각인된 토마스 목사에 관해서 필생의 사명감으로 그의 생애와 선교사역을 정리하고자 했던 줄기찬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논문쓰기는 이내 벽에 직면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집대성할 만한 기록물(documents)을 찾을 수 없었다. 고향엔 토마스 가문(家門) 흔적조차 없었다. 선교사 파송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LMS) 또한 해체, 자료 일체가 런던대학교(SOAS)에 이관됐음을 확인, 토마스 목사가 LMS본부에 보낸 선교편지 10개가 그곳 아카이브(Archives)에 보존돼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학수업에 관한 기록물은 개인도서관(Dr. Williams Library)에 보존돼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것뿐이었다. 그 기록물들은 필자의 논문집필에 필요조건(必要條件)은 될 수 있지만,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엔 어림없는 것들이었다.
#토마스 찾아 삼만리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990년대 초 토마스에 관한 논문을 집필하던 시절, 필자는 '아카이브(Archives)'에 관한 개념조차 희박했다. 지도교수 우스토프 박사를 통해 정립될 수 있었다.
-아카이브(Archives): 역사적 혹은 장기 보존의 가치를 지닌 기록이나 문서들의 컬렉션(collection). 문서나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 시설, 기관을 뜻함. 보통 복수형으로 사용하며, 동사(動詞)로도 쓰임.
우스토프 박사(Prof. Dr. Verner Ustorf)를 아시는가? 그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선교신학자로 영국 버밍함대학교가 평생교수로 초빙, 필자의 토마스에 관한 논문 집필 제안을 기꺼이 수용한 석학. 그가 아프리카 민족교회를 연구할 당시, 자료 때문에 박사학위 논문 집필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자료 부족 사태에 직면한 필자를 격려, 지도교수가 오히려 앞장을 서주는 것이었다.
-첫째, 토마스 목사의 후손을 찾아냅시다. 직계 부재시 방계 유족을 탐문하면 됩니다.
-둘째, 영국, 미국, 중국, 한국 등 토마스 관련 아카이브(Archives)를 샅샅이 탐색합시다.
토마스 목사의 '흔적을 찾아서' 떠나는 '토마스 찾아 삼만리' 대장정(大長征). 다짜고짜 토마스의 고향에 편지를 띄웠다. 외계인의 존재를 탐문코자 우주공간에 띄우는 전파같은 모양새 아니겠는가.
-"토마스 가문의 후손을 찾습니다!"-본인은 한국인 목사로서, 1866년 한국 개신교 최초 순교자 토마스 목사를 주제로 버밍함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 논문을 집필하고 있는 바, 이 편지를 접하시는 분은 토마스 목사의 후손을 만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993년 7월 5일 고무송 드림.
#"아카이브(Archives)를 수색하라!"
앞서 언급한 대로, 토마스 목사가 LMS에 보낸 선교편지 10통이 보관된 런던대학교(SOAS) 아카이브. 지도교수의 추천서로 출입 허가, 사서 입회 하에 특수장갑에 연필 한자루를 소지,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SOAS 아카이브엔 세계 각지에서 보내 온 선교사들의 편지는 물론 선교지부 건축설계도, 토지구입 매매계약서, 영수증 등 각종 증빙자료까지 낱낱이 보존돼 있는 것이었다. 놀라움이었다.
"아카이브를 수색하라!"- 지도교수의 권면에 따라 방문케 된 미국의 아카이브는 또 다른 신세계(新世界). 모든 자료를 전산화하여 필자는 토마스 목사가 승선, 조선에 입국했던 제너럴 셔먼호(the General Sherman)에 관한 자료는 물론, 토마스 목사에 관련된 기록물들을 신속하고도 편리하게 수집, 논문 집필에 크게 활용할 수 있었다. 디지털 아카이브 최대 수혜자(最大受惠者)가 된 셈이었다.
-한국기독공보사 근무 30년(편집국장 10년) 연륜과 함께 주간신문 가운데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기록물과 삶을 나누면서, 우리 신문의 역사적 가치가 한국교회의 공유자산(共有資産)임을 절감케 됐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힘겨운 일이었지만, 사장 취임과 함께 구성원들의 희생적인 협조와 김태영 이사장님을 비롯, 이사님들의 적극적 지원으로 디지털 아카이브 창설의 꿈을 펼치게 된 것입니다.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안홍철 목사의 진솔한 고백. 그는 디지털 아카이브 창설을 공약으로 천명, 사장 취임과 함께 독자들의 격려와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2년 여 작업 끝에 역사적인 꿈을 실현했다. 아카이브 공식 오픈을 앞두고 6월 30일 총회창립100주년기념관에서 본보와 한국장로교역사학회 공동주최 디지털 아카이브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의 '한국기독공보의 역사 1946~1979' 제하의 발표를 경청케 되며, 삼가 한국기독공보사 디지털 아카이브 탄생을 축하한다.
-(74년 역사를 보유한) 한국기독공보사는 두 번의 폐간(1950, 1966년), 두 번의 속간(1952, 1970년), 세 번의 제호변경을 겪으며 지령 3245호를 넘어섰다. 해방 이후 가장 오래됐고, 가장 많은 지령을 가진 주간지로서 4만 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역사적 자료가 있지만,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국기독공보사는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최첨단 검색서비스를 제공, 한국교회사는 물론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에 혁명적인 기여를 했다.
#절묘(絶妙)한 하나님의 섭리(攝理)
그렇다. 그것은 '절묘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지도교수의 가르침 따라 무턱대고 토마스의 고향에 띄웠던 편지. 어찌 답신(答信)을 기대할 수 있었으리요. 그랬는데…
-친애하는 고무송 목사님께
저는 토마스 목사님의 손녀입니다. 지금 토마스 목사님께서 집으로 보낸 모든 편지를 검토하고 나서 이 사본들을 보내드립니다. 제 생각엔 어디엔가 좀 더 자세한 기록들이 남아있을텐데,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후로는 그것들을 살펴보지 않아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아지는 대로 또 보내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 토마스 목사님의 사역과 순교를 선교신학 박사학위(PhD) 논문으로 집필하신다 하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7월 27일 Winecellar농장에서 엘리자베스 한(Elizabeth Hann)
토마스의 고향에 편지를 띄운 게 7월 5일, 답신은 7월 27일. 22일만에 소통이 이뤄진 것이다. 즉시 답장을 보냈다. 선별해서 보내준 자료뿐 아니라, 필자에겐 토마스에 관해선 휴지조각이라도 필요하니, 직접 자료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랬는데, 초대장을 보내온 것 아닌가!
-고무송 목사님께
8월 19일 목요일 12시 30분 점심식사에 초대하고 싶어서 이 편지를 보냅니다. 목사님께서 M4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도움이 되도록 간단한 약도를 동봉합니다. 돌로 지은 낡은 헛간에서 왼쪽으로 꺾은 뒤 저희 집까지는 반 마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도상으로는 훨씬 먼 거리처럼 보일 것입니다. 1993년 8월 6일 엘리자베스 한 드림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 보도한 기독신보(基督申報) 원본과 사진 발굴
필자 부부를 가정으로 초대한 엘리자베스 한 여사는 큰 규모의 과수원을 소유한 70대 유복한 부부로서, 한 여사는 필자 소속의 버밍함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석사학위 소지자. 지역사회 자연보호에 관여하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토마스 목사 관련 각종 기록과 희귀한 사진들! 필자의 논문 집필에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을 골고루 갖춘 '보화'들을 엘리자베스 한 여사는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토마스 목사에 관한 연구를 위해 필자에게 선뜻 공여하는 것 아닌가. 그 가운데엔 193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평양에서 열릴 때 개관한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에 관해서 상세히 보도한 기독신보(基督申報) 원본과 사진들이 포함돼 있잖은가!
-전선(全鮮) 40만 기독교 신자의 적성을 모하 지은 도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 락성식은 오는(1932년) 9월에 평양에서 개최되는 장로회 총회와 예수교련합공의회를 기회로하야 성대히 거행하려니와 봉래도 맞은 높은 언덕 송림 가온대 웅대하게 자리를 잡고 서잇어서 대동강의 아래 우를 나려다보고 조선기독교의 중심인 평양성을 바라보며 은근하게 울려대는 종소리는 조선 산하에 뭉키여 사는 2천만 백의 인에게 무엇을 말하고 잇느냐!(졸저, 토마스찾아삼만리, 드림북, 2014, pp.164~165)
필자는 다섯 차례 평양을 방문한 바 있거니와, 그때마다 강영섭 목사(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를 비롯, '조그련' 스탭들의 안내로 토마스 목사의 '흔적을 찾아서' 유물과 순교유적들을 탐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에 관해선 함구하더니, 마침내 퉁명스런 답변을 토해냈다.
-그 (서)양식 건물일랑 미 제국주의자들의 폭격기가 폭탄을 퍼부어설라무네 날아가 버렸수다레!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 재건의 꿈
필자는 꿈을 꾸고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그날,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를 재건하는 현란(絢爛)한 꿈! 기념교회엔 '토마스 목사 아카이브'를 조성, 필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영구보존하는 일을 비롯, 필자가 이끌고 있는 '토마스선교회'와 '한국교회인물연구소'의 사역을 전국 및 전세계로 펼쳐나가는 청사진. 최근 '흔적을 찾아서' 주인공들의 선물이 기념교회에 답지하고 있다. 파이프오르간(홍성훈), 말씀의 벽(박재현), 시비건립(이택민) 등. 특별히 '토마스 아리아'를 토마스 목사 순교기념교회 재건기념 리사이틀로 개최해 드리겠다는 런던으로부터의 놀라운 소식! 바야흐로, 고은이 작시, 이신우 작곡 '토마스 아리아' 마지막 세번째 단락,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 클라이막스가 바리톤 최성규의 기름부음 바 된(Lord's Anointed) 바리톤(baritone)으로 대동강을 흘러 넘쳐 평양의 하늘로, 그리고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어루만지며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 자락을 휘돌아 한라산까지… 아름다운 우리들의 조국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 울려 퍼지려는 도다.
-들으소서, 나의 사랑하는 자여// 보이시나요// 의의 싸움 다 싸우고/ 선한 경주 다 마치고/ 당신 앞에 머리 조아려/무릎 꿇은 나의 모습이// 나의 귀하신 분/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아아, 토마스 목사님이시여!
그대는 조선의 제단에 스물 일곱 젊음, 번제(燔祭)로 드려진 위대하고도 고마우신 순교자로소이다.
고무송목사 / 한국교회인물연구소·전 본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