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9장 라마 나욧

삼상19장 라마 나욧

디케DIKE 3 1939

-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을 본 요나단은 다윗과 형제 언약을 맺고 자신의 왕자직을 양도하겠다는 뜻을 보임. 사울왕 역시 다윗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수하에 두게 됨. 그러나 백성들이 자기 보다 다윗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사울은 다윗이 언젠가 자신의 왕권을 빼앗아 갈 것을 시기하여 다윗을 제거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게 됨. 아들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하시는 @을 바라보았고, 사울은 왕권을 바라보았기에 이렇게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 것임.

 

- @을 섬기는 일에 가장 큰 장애물은 소유욕임.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거부하셨기 때문임.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은 바로 모든 소유를 포기하라는 의미였음(빌2:5-8). 그렇게 할 때만 @나라에 속한 자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임. 지금 내게 주어져 있는 것들은 @이 잠시 내게 맡긴 것들임. @께서 내게 맡긴 일을 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들임. 그 일을 수행하다 주님이 부르실 때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신자의 삶임(cf. 요13:1).

 

▪ 1-7절/ [뉘우침] 다윗을 은밀히 죽이려 했던 사울왕은 그 일에 계속 실패하자, 이제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일 것을 명함(1절). 이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줌. 그리고 아버지 사울왕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구원한 다윗을 죽이려는 일이 @께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말하며 다윗을 죽이지 말 것을 촉구(4-5절). 이에 사울이 뉘우치며 다윗을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함(6절).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가 이를 알리고 다시 돌아와 사울왕을 섬기라고 함(7절).

 

▪ 8-17절/ [질투의 종]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계속 승전고를 올림. 이러한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인기가 치솟는 것을 본 사울의 질투심이 또 발동.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함. 사울은 이전에 이미 두 번이나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었음(18:11). 요나단의 말에 뉘우치기까지 했던 사울. 그러나 솟구치는 질투심 앞에 사울의 다짐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음. 다윗이 이를 피하고 집으로 도피함. 그날 밤 사울이 군사를 다윗 집으로 보내 아침에 다윗을 죽이게 함. 미갈이 이를 알고 다윗을 창으로 달아 내려 도망치게 함.

 

. 인간의 마음은 우리의 통제 영역 밖에 있음. 인간의 마음 수련은 잠시 마음의 쓰레기를 가라앉히는데 도움을 줌. 그러나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지면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온갖 쓰레기들이 다시 올라오듯 미움, 질투, 분노, 염려 같은 것들이 솟구쳐 올라옴(한 평생 마음 수련을 하는 스님들이 한 순간에 폭도들로 변하는 일). 사울은 자신이 다윗을 죽이려는 일이 @께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깨닫고 뉘우치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음. 그러나 그의 다짐과 맹세가 솟구치는 질투와 미움을 제어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음.

 

 . 롬7:14-15/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죄의 종된 인간. 사울의 이런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는 우리의 다짐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는 자아에 의해 무너지기만 할 뿐임. => 인간의 그 어떤 수련, 심리치료 같은 것으로 새 사람이 되는 법은 없음(골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 18절/ [라마 나욧]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의 심중을 확인한 다윗은 사울을 떠나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피신. 자신을 기름 부어 왕으로 삼은 사무엘에게 이 모든 일을 고하고 @을 그의 피난처로 삼은 것임.


. 19-24절/ 이를 알게 된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군사를 나욧에 보냄. 그들에게 @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함. 또 두 번 더 다른 군사들을 보냈으나 동일한 일이 벌어짐. 그러자 사울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아감. => 사울이 라마 나욧에 이르자 @의 영이 그에게 임하고 걸어가며 예언을 하고, 옷을 벗은 채로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워 있는 행동을 함.

 

▶ 라마 나욧 안의 세계와 그 밖의 세계: 라마 나욧 안의 세계는 성령이 왕 노릇 하는 세계, 라마 나욧 밖의 세계는 육신이 왕 노릇 하는 세계임. 라마 나욧 밖에 사람들은 육신을 좇아 @의 기름 부음 받은 사무엘과 다윗을 죽이려 하고 있음. 그런데 그들이 라마 나욧 안의 세계에 들어 서자 성령의 지배를 받고 예언 즉 @의 말씀을 따라 행하기 시작함. 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새 사람이 된 것은 단지 라마 나욧 안에 있었기 때문임.

 

- @은 이 사건을 통해 @의 영을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시길 원하심. 사울은 한 때 @의 영의 지배를 받았던 자였음. 그때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의 뜻 안에서 형통했었음. 그런데 그가 @의 말씀 대신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기 시작하면서 @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게 됨. 그 이후 사울은 번뇌에 사로잡힌 자가 되어 염려와 두려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의 사람 사무엘과 다윗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됨. 이것이 @의 영을 받지 못한 이 세상의 실상임. @의 영을 받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사귐이 전무.

 

- 그러한 그가 라마 나욧 안의 세계에 들어서자 @의 은혜의 세계를 맛보게 됨. 더 이상 욕망에 이끌려 살지 않게 됨. 자신의 실체를 가리는 위선의 옷도 벗어 버린 채 @의 말씀에 붙들려 지내게 됨. 이러한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의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야 함.

 

- @의 영과 단절된 이 세상은 모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한 평생 육신의 욕망을 따라 @과 대적하는 삶을 살아감. 그러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상태에서 @의 엄중한 심판을 맞이 하게 됨. 그러나 @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의 말씀의 세계를 보게 해 주심. @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이 세상의 현실,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의 운명을 보게 하심. 그리고 우리의 피난처 되신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 피하게 하심.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심. 이것이 라마 나욧의 세계에 초대 받은 신자에게 허락된 복임.

3 Comments
디케DIKE 2021.08.01 15:52  
라마[ Ramah ] 높은 곳’이란 뜻.
팔레스틴의 네 장소의 이름 '라마':- 라마

  1)베냐민에 있는 에브라임 경계의 성읍
  2)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사무엘의 고향
  3)납달리에 있는 요새성
  4)아셀 경계에 있는 지계표
  5)이스라엘과 수리아 사이의 격전지
  6)포로에서 돌아온 후 베냐민 지파가 다시 거한 장소

1. 베냐민 지파의 성읍 라마 - 예루살렘 북쪽 8㎞ 지점에 위치한 교통 요지. 남북 분열 왕국 시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유다로 가는 이스라엘 주민의 남쪽 이주를 막고 남유다를 견제하기 위해 라마에 성곽을 축성하였다(왕상 15:17). 그러나 남유다 왕 아사의 요청을 받은 수리아에 의해 라마 성은 허물어졌고, 남유다는 여기 사용된 건축 자재들을 가져와 게바와 미스바 성을 쌓았다(왕상 15:18-22). 훗날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던 중 집결지인 라마에서 석방되었으며(렘 40:1, 4),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무리 중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곳에 정착하였다(스 2:26; 느 7:30).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묘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삼상 10:2).

2. 에브라임 산지 성읍 라마 - 룻다 북동쪽 14㎞, 실로 북서쪽 26㎞ 지점. 사무엘 아버지 엘가나(삼상 1:1, 19)와 사무엘(삼상 1:19-20)의 고향. 사무엘은 이곳에서 제단을 쌓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활동했으며, 또 매년 각 지역을 순회한 후에는 이곳으로 돌아왔다(삼상 7:15-17). 한편, 왕이 되기 전 다윗이 사울의 피해 이곳에 몸을 숨긴 적이 있으며(삼상 19:18-23; 20:1), 훗날 사무엘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삼상 25:1; 28:3). 다른 라마와 구분하기 위해 ‘라마다임소빔’(삼상 1:1)으로도 불린다.

3. 길르앗 라마 - 요람(여호람) 왕이 수리아와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길르앗의 라마(왕하 8:29; 대하 22:6). ‘라못 길르앗’과 같은 곳이다.

4. 이외에 ① 두로 동남쪽 2㎞ 지점, 아셀 지파 경계에 있는 라마(수 19:29), ② 납달리 지파의 요새지 라마(수 19:36), ③ 유다 남쪽 네게브에 있는 시므온 지파의 라마(수 19:8)가 있다
디케DIKE 2021.08.01 15:53  
나욧
[ Naioth ]
거주'; 팔레스타인의 한 장소 '나욧':- 나욧

  1)사무엘 시대에 선지자들의 거처
주거’란 뜻. 예루살렘 북쪽 13㎞ 지점의 라마 지방에 속한 성읍(삼상 19:18-24). 사무엘이 선지 생도들을 훈련시키는 학교가 있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이 성읍에 잠시 은신하기도 했는데, 이때 사울의 군사들은 세 차례에 걸쳐 다윗을 잡으로 왔으나 그때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 왕이 친히 다윗을 잡으러 왔으나 사울 역시 옷을 벗은 채 예언 역사에 동참하게 되어 다윗 체포에 실패한 일이 있었다.
디케DIKE 2021.08.01 16:25  
에브라임1
[ Ephraim
두 배로 열매를 맺는’, ‘풍성한’, ‘이중의 풍작’, ‘열매 풍성한 땅’이란 뜻.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과 애굽의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인 ‘아스낫’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로서, 므낫세의 동생이다(창 41:50, 52; 50:23). 할아버지인 야곱에 의해 양자로 받아들여져 아들 취급을 받았고(12지파 안에 포함됨 - 요셉의 두 아들이 각각 독립된 지파로 인정받아 13지파가 되었으나 대신에 레위 지파가 성막 봉사자들로서 영토를 분배받지 않음으로써 12지파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음) 더욱이 형인 므낫세를 제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창 48:1-20).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에브라임 지파는 왕국 분열시 북이스라엘 10지파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여 북이스라엘의 대명사가 되었다(대하 25:7; 겔 37:19; 호 4:17; 5:5).

한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과 적대감이 존재했던 것 같다(사 9:20-21). 지파의 규모로 볼 때 므낫세 지파가 더 큰 집단(창 49:22)이었으나, 역사적으로는 에브라임 지파가 더 강력한 지도력(여호수아, 사사 드보라, 여로보암 왕 등을 배출함)을 행사했던 것이다(민 13:8; 수 17:17; 21:21; 삿 4:5; 삼상 1:1; 시 78:9; 슥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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